10년을 돌아보다
프리아이브를 운영한 지 10년이 됐다. 국내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정말 많이 했다. 다른 업체들이 포기했던 대형 프로젝트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했고, 프론트엔드 전문 개발사로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수십억 매출에 많은 직원을 다루며 사업을 운영해왔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면, 뭐가 남았을까. 클라이언트의 서비스는 잘 돌아가고 있겠지만, 정작 '프리아이브의 서비스'라고 부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10년 동안 내 기술을 규모 있게 팔았다는 것. 솔직히 그 정도였다.
남은 건 경험이다. 다른 업체들이 다 포기했던 프로젝트를 끝냈다는 것,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일을 책임졌다는 것. 그건 분명히 값진 경험이다. 하지만 10년 후 결과물이 이렇다는 게, 전혀 창피하지는 않다. 다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10년 전, 제자의 한마디
강사 시절 가르쳤던 제자가 있다. 지금도 연락하는 사이인데, 이 친구는 브랜딩 디자인과 인쇄물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다. 인쇄 쪽 시장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친구였기에, 자기가 잘하는 영역의 연장선에서 사업을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이런 말을 꺼냈다.
"청첩장 만들어서 팔고 싶어요. 근데 모바일 청첩장을 함께 해야 할 것 같아요."
솔직한 첫 반응은 '왜 그걸 해?'였다. 본인은 종이 청첩장은 잘 만들 자신이 있다며 사업 계획을 꺼냈는데, 나는 안 된다는 생각보다 그걸로 과연 돈벌이가 될까 하는 의문이 앞섰다.
그래도 나는 누가 뭘 하자고 하면 부정부터 하는 타입은 아니다. 안 해본 건 관심이 생기면 일단 해보고, 그다음에 판단하는 쪽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부분을 짚어봤다.
"마케팅이나 사업 이야기 말고, 업무적으로만 보자. 네가 청첩장을 만든다 치면, 모바일 청첩장 서비스는 누가 관리해? 너 할 수 있어?"
그때 알았다. 대안 없이 던진 이야기라는 걸.
역제안, 그리고 혼자 남다
그래서 내가 반대로 제안했다. 내가 모바일 청첩장을 만들고, 운영하고, 마케팅까지 해볼 테니 너는 종이 청첩장이 팔리는지 검증해보라고.
실제로 1차 화면 버전을 만들어서 전화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좀 의외였다. 주변에 물어봤는데 돈이 안 보인다며, 다른 사업 아이템을 다시 제안하더군.
나는 그래도 계속 진행하겠다고 했다.
"왜 갑자기 저의 하찮은 생각에 꽂히셔서 그러시냐고."
제자의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글쎄, 나도 그때는 정확히 왜인지 몰랐다. 그냥 뭔가 걸린 게 있었나 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AI 시대, MVP는 쉬워졌다
약 1년 전쯤이었다. AI로 개발 작업을 하면서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에 정직원이 전부 매달려도 런칭 하나 못 끝내던 인하우스 서비스들이, 단 며칠 만에 완성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처음엔 흥분했다. '이거 기회인데?' 하면서 행복한 꿈을 꿨다.
수많은 아이디어로 MVP를 만들었다. 연기자 프로필 플랫폼 '트라이허브', 상표 등록까지 마쳤던 교육 문제 저작 도구 '프리토'. MVP 단계까지 갔던 프로젝트들이 여럿 있었다. 기술적 완성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제대로 런칭한 건 하나도 없었다. 홍보 예산과 인프라 부족, 데이터 수급 문제. 각 프로젝트마다 병목이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SI 업체가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할 때마다 새로운 대규모 수주가 들어왔다. 당장의 매출 앞에서 자체 서비스는 늘 뒤로 밀렸다. 구조적으로 자체 서비스를 만들 수 없는 환경이었던 셈이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내가 만들고 기술을 책임질 테니, 주변 사람들 중에 본인의 전문 분야로 서비스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돈을 보고 한 게 아니었다. 서비스 성공이 정말로 가능한 건지, 지켜보고 싶었다. 모든 걸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조건까지 내걸면서.
몇 명에게 서비스를 만들어주고 운영을 맡겼다. 제작과 런칭은 다른 문제이니, 본인이 가진 전문 지식을 서비스에 풀어보라고.
단 한 명도 런칭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앞서 제자처럼.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말하면 기대하는 게 있었다. 요즘 말로 '딸깍'. 버튼 하나 누르면 다 되는 것. AI가 알아서 해주는 것. 그걸 기대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이 블로그 글을 쓰는 나조차도 자동화 프로세스를 활용한다. 하지만 글 쓰는 재주가 없는 내가 하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걸 전달하기 좋게 풀어내는 것이다. 작가 한 명을 고용한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을 내가 원하는 느낌으로 다듬어 나간다.
'딸깍'은 그만큼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AI는 아직까지 생산성 도구이지, 창의적 도구가 아니다. 거기에 의존하면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수십 개의 MVP를 만들고도 하나도 런칭하지 못한 내가 그 증거다.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기술 가능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의 확신과 끈기의 문제라는 걸.
이 자각이, 결국 모바일 청첩장이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그 이야기는 2편에서.




